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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옛날 옛날 한 옛날”… 직접판매의 기원

By 2024년 04월 24일6월 5th, 2024No Comments

한국의 방문판매가 방물장수에서 비롯됐듯이 직접판매의 종주국 미국에서는 18세기부터 ‘양키 행상인(Yankee Peddler)’으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된다. 이들은 외딴 지역을 찾아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냄비, 책, 녹차, 바르는 약 등 가정에 필요한 물건을 팔았고 훗날 직접판매의 효시로 기록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미국을 비롯한 직접판매 주요국들의 기원(Origin)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에디터 _ 두영준

직접판매 최초의 인플루언서, 행상인

앞서 이야기한 미국의 양키 행상인은 1840년대까지 농촌과 외딴 지역에서 중요한 유통채널 역할을 했다. 마을 사람들이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먼 도시까지 가기에는 부담이 컸기 때문에 당시 행상인을 기다리는 주민들이 많았고, 행상인이 오면 집으로 초청해 사과 주스를 대접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특히나 당시의 행상인들은 대부분 젊은 남성들이었기에 뭇 여성들이 목이 빠지게 기다리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행상인들은 지금으로 치면 SNS에서 ‘공구(공동구매)’를 진행하는 인플루언서에 비유할 수 있을 만큼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행상인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외부접촉이 없었던 마을 사람들이 도시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는 대화의 장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교통수단과 통신수단이 점차 발달하면서 도시에 있는 상점이나 제조업자 등으로부터 상품을 직접 주문해 받을 수 있게 됐고, 자연스레 행상인들이 소매점을 열게 되면서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모습도 점점 줄어들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행상인, 즉 판매원의 모습이 아예 종적을 감춘 것은 아니었다. 1855년 출판사 사우스웨스턴 퍼블리싱 하우스(Southwestern Publishing House)가 설립됐는데, 이 회사는 처음에는 우편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다 남북전쟁(1861~1865) 이후 젊은 남성을 통해 각 가정을 방문해 제품을 파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판매원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1900년에 접어들었을 때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판매원의 수가 약 9만 3,000명으로 추산됐으며, 직접판매기업의 의견을 대변하고, 윤리적인 사업을 통해 존경받는 직업으로서의 인식을 형성하기 위해 협회 설립에 대한 움직임이 있었다. 이에 따라 1910년 오늘날의 미국직접판매협회(DSA)의 전신이자 10개의 회원사로 구성된 에이전트 크레딧 협회(Agents Credit Association)가 뉴욕에 설립되며 직접판매산업을 대변하는 조직이 됐다. 협회는 새로운 의지와 사업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명칭을 여러 차례 바꿨는데, 1914년 전국대리점협회로, 1917년에는 전국대리점 및 우편주문협회로 변경됐다. 이후 1920년 다시 전국대리점협회로 이름이 바뀌었고, 1925년 전국직접판매협회 그리고 1969년 지금의 직접판매협회가 됐다.
1930년대 미국의 직접판매업계는 ‘독립계약자’라는 개념을 받아들였던 시기다. 이는 판매원들이 자신을 위해 사업하며 교통비, 샘플 구입, 판촉자료 등에 필요한 모든 경비를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는 판매원 계약서를 만들어냈다. 당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최저임금 책정, 근로조건 규제 등을 담은 뉴딜정책을 펼쳤는데, 이로써 기업들이 판매원들을 독립계약자로 전환해 정부 규정을 준수하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게 됐다.

샤클리, 암웨이, 메리케이 등장으로 활황

1930년대 후반에는 여러 사람을 불러모아 음식이나 커피, 차 등을 마신 뒤 사업설명회와 리크루팅을 진행하는 방식의 ‘파티 플랜’이 생겨났다. 최초의 파티 플랜은 방문판매원 노먼 스콰이어(Norman Squires)가 고안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여러 집을 각각 다니는 것에 대해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고, 한 번에 10~12명을 초대한 후 제품을 파는 사업 방식을 생각해냈다. 노먼 스콰이어는 스탠리 홈 프로덕츠(Stanley Home Products)의 창업자 프랭크 스탠리 베버리지(Frank Stanley Beveridge)에게 이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프랭크는 파티 플랜을 차별화된 마케팅으로 받아들였다.
1948년에는 훗날 암웨이에 인수되는 뉴트리라이트가 직접판매 영업방식 중 하나인 다단계판매(MLM)를 최초로 도입했고, 사업자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을 통해 판매된 매출에 대한 수수료를 지급했다. 암웨이의 설립자인 리치 디보스와 제이 밴 앤델은 1949년 뉴트리라이트의 사업자로 합류해 1958년까지 5,000명에 이르는 사업자 조직을 이끌었다. 이후 이들은 1959년 암웨이를 설립하였으며, 1972년 뉴트리라이트의 지분 51%를 인수한 후 1994년 완전히 흡수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는 샤클리(Shaklee, 1956년), 암웨이(Amway, 1959년), 메리케이(Mary Kay, 1962년), 내셔널 세이프티 어소시에이츠(National Safety Associates, 1970년) 등의 업체가 등장하면서 산업이 급격히 확장되는 시기였다.
1980년대에는 오늘날 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허벌라이프, 썬라이더, 뉴스킨, 멜라루카, 유니시티 등의 굵직한 기업이 탄생했다. 미국의 직접판매산업은 1985년부터 1994년까지 10년간 매출이 증가했다는 통계가 발표됐다. 1994년 매출은 165억 5,000만 달러에 달했고, 판매원 수는 620만 명에 이르렀다. 2022년 현재는 405억 2,000만 달러 규모로 성장했으며, 1,460만 명의 판매원이 활동하고 있다.

중국, 다단계판매 금지하자 폭동 사태

중국에서는 현재 다단계판매(傳銷: 전소)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고 우리나라의 방문판매인 직소(直消)만 허용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다단계판매를 금지했던 것은 아니다.
1993년 GNP 13.4%의 고도성장을 이룩하면서 경제 대국으로 변모하던 중국 시장에는 여러 다단계판매업체들이 진출했던 시기다. 에이본 화장품은 당시 광저우와 상하이에 7만 7,000여 명의 판매원을 거느렸고, 암웨이와 메리케이는 제조시설을 설립해 터전을 다졌다. 무엇보다 암웨이는 중국에 진출하자마자 수만 명의 판매원을 확보했으며, 뉴트리 메틱스, 네이처스선샤인, 썬라이더, 재팬라이프도 이때 중국에 진출했다.
당시 중국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중국에는 100~150여 개의 다단계판매업체가 영업하고 있었고, 종사자는 50만 명에 달했다. 또한, 다단계판매 사업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암웨이, 에이본, 메리케이 후원으로 북경, 상하이, 등지에서 세미나가 잇따라 개최되기도 했다.
그러다 불과 몇 년 뒤인 1998년 중국의 최고 국가행정기관인 국무원이 “어떠한 형태의 다단계판매활동도 금지하며 이전에 허가를 받은 기업도 모두 판매활동을 중지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맞는다. 당국에서 다단계판매를 금지한 이유는 정부기관 간부, 현역군인, 심지어는 학생들까지 다단계판매 활동에 참여하면서 사회적인 문제로 비화했고, 가격 사기, 재산 편취, 가짜·밀수상품 판매 등의 행위가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다단계판매 금지 조치에 전국에서 이에 반발하는 항의와 폭력사태가 빈발했다. 당시 중국에서 다단계판매에 종사하던 인구는 약 1,000만 명이었는데, 이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되자 정부의 조치에 강력하게 반발했고 급기야 폭력사태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후난성(호남성) 장자지에(장가계)에서는 시위대들이 차를 부수고 가게를 약탈하는 등 폭력사태가 벌어져 10여 명이 부상당하고, 여러명이 체포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다단계판매가 금지됐지만, 이후 2005년 직소관리조례와 금지전소조례를 발표하면서 직소(방문판매)가 허용됐고 직접판매산업이 제도권에 들어섰다.
직소 시장은 중국의 인구에 비례해 급격하게 커지기 시작하며 지난 2018년 전 세계 1위를 차지하기도 했지만, 2019년 ‘취엔지엔’ 사태 이후 해마다 하락세를 이어가더니 2022년 4위까지 밀려났다. 이 사태는 직소 기업 취엔지엔이 건강식품이 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허위·과대광고를 하면서 벌어진 것이다. 4살 딸을 둔 한 아버지가 취엔지엔의 광고를 믿고 딸에게 제품을 먹였는데 안타깝게도 딸은 사망했다. 이후 취엔지엔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했고, 이러한 내용을 SNS에 공개하면서 여론이 확산하자 당국의 조사가 시작됐다.
당시 취엔지엔은 ‘2017년 글로벌 톱 100’에서 약 7억 8,6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려 29위에 기록될 정도로 규모가 있는 기업이었다. 그러나 허위·과대광고 사건으로 인해 중국 당국의 조사를 받던 중 중국에서는 금지된 다단계판매 방식으로 사업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회장을 포함한 임원 18명이 체포됐다. 취엔지엔의 회장은 2020년 열린 재판에서 징역 9년과 함께 벌금 5,000만 위안을 선고받았다.
또한, 중국 정부는 2019년 1월부터 100일 동안 건강식품을 취급하는 모든 회사를 대상으로 전면조사를 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직소 기업들이 영업에 상당한 타격을 받아 현재까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때 직접판매 쌍두마차 일본

일본에서 네트워크 마케팅이 시작된 것은 1970년대로 알려져 있다. 이후 일본 직접판매산업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급속도로 성장했고, 한때 전 세계 직접판매시장이 미국과 일본으로 양분화되기도 했다. 심지어 미국기업이 미국에서 영업을 시작하는 동시에 일본 지사를 오픈하거나 미국계 회사가 일본에서 먼저 사업을 시작하는 사례도 있었다. 1996년 일본에서 영업 중인 다단계판매업체는 100여 개였고, 우리나라보다 약 10년 정도 앞선 역사가 있었으며,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때 일본암웨이의 성장세가 조명되기도 했는데, 1981년 본격적인 영업 이후 불과 5년 동안 매출이 무려 60배 이상 성장했고 1991년에는 1,000억 엔의 매출을 기록했다. 한편 1980년에는 일본직접판매협회(JDSA)가 설립된 해이기도 하다. 또 지난 2006년 당시 직접판매세계연맹(WFDSA) 아시아 담당이사이자 일본암웨이 사장 리처드 존슨은 “전 세계 유통시장에서 직접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1%가량이며, 특히 미국과 일본에서는 전체 시장의 3%가량을 차지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직접판매시장의 규모는 해를 거듭할수록 축소되고 있는데, 지난 2015년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전 세계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일본은 독일 시장에도 밀려 5위에 이름을 올렸고 현재도 해당 순위에 머물러 있다. 일본의 직접판매시장 특징은 한국과는 달리 일본 자국 기업의 비중이 크고 자국 제품 및 소비에 대한 신뢰도가 크다는 점이다.

한국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시장, 독일

독일에서 직접판매산업이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시기는 1950년대 이후다.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당시 행상인들이 가정을 방문해 제품을 판매했고 홈 파티 문화가 확산하면서 직접판매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1962년 한국에서도 그릇과 용기를 파는 회사로 잘 알려진 미국의 직접판매기업 타파웨어(Tupperware)가 설립되면서 붐이 일었고, 이후 암웨이가 1975년 독일에서 사업을 시작했으며, 1980년대부터 LR 헬스&뷰티, 피엠인터내셔널과 같은 독일 직접판매기업이 등장했다. 독일의 직접판매협회(BDD)는 1967년 설립됐으며, 1980년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행동강령을 도입했다.
독일의 직접판매시장은 2022년 179억 8,6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전 세계 3위를 기록했을 만큼 독일 경제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으며, 90만 9,000여 명의 판매원이 활동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인플레이션, 생활수준 향상 등으로 인해 부업을 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으며, 직접판매가 이러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편,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직접판매 파티가 일시적으로 금지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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