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기능식품은 2002년생이다. 올해 22살이 됐다. 지금은 국민 대다수가 ‘건강기능식품’이란 단어에 익숙하지만, 이전에는 ‘영양식품’, ‘건강식품’, ‘건강보조식품’ 등 명칭과 정의가 모호했다. 하지만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이하 건강기능식품법) 제정과 함께 제대로 된 명칭과 뚜렷한 법적 지위를 갖게 됐으며, 관련 산업도 성장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를 통해 쑥쑥 성장한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20살 성인이 된 2022년에 6조 원 규모를 넘어섰다. 이렇게 성장한 건강기능식품의 원조는 무엇일까? 정확하게 ‘이것’이라고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업계 관계자들의 경우 대부분 발효 식품, 홍삼, 효소, 비타민을 꼽는다. 건강기능식품의 원조로 꼽히는 이들의 시작과 현재를 알아봤다.
에디터 _ 최민호
인류에 건강을 선물한 ‘발효 식품’
우리나라에서 현대적 개념의 건강기능식품이 정확하게 언제 어떻게 등장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제한적이며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자연에서 나오는 식물이나 동물의 일부분이나 추출물을 이용한 건강에 좋다고 여겨지는 식품이 사용됐다.
대표적인 것이 ‘발효 식품’이다. ‘발효’는 유기체가 탄수화물을 알코올 또는 산으로 변환시키는 대사 과정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 대표적인 먹거리 ‘김치’는 배추, 무 등의 채소에 고춧가루, 마늘, 생강 등의 양념을 섞어 만든 발효 식품이다. 지금이야 식탁에 빼놓을 수 없는 반찬으로 인식되지만, 겨울 동안 신선한 채소를 섭취하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비타민과 미네랄의 주요 공급원으로 건강식품의 역할을 해왔다.
전 세계적으로 범위를 넓혀도 발효 식품은 건강식품의 원조라고 볼 수 있다. 인도에서는 기원전 2000년 전부터 힌두인들이 발효 우유를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이집트, 그리스, 로마에서도 기원전부터 우유, 치즈, 버터가 일반적으로 사용됐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발효로 인해 유기산이 형성되는 것이 알려지는데 이것이 바로 ‘유산균’이다. 유산균은 1857년 파스퇴르에 의해 처음 발견됐지만, 이를 널리 알린 것은 바로 메치니코프다. 1907년 메치니코프는 ‘생명 연장’이란 논문을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장 속에 남은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과 숙변이 인체에 독소를 만들어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또한, 유산균 발효유를 일상적으로 마시는 불가리아와 코카서스 지방에 장수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어 유산균 발효유의 섭취가 수명을 늘려준다고 주장했다. 메치니코프는 1990년대 hy(옛 한국야쿠르트)가 야쿠르트 상품명으로 사용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hy는 1971년 일본 시로타 미노루 박사가 1930년 상업적 배양에 성공해 판매한 유산균 발효유 ‘야쿠르트’를 우리나라에 들여와 본격적인 발효유 시대를 열었다. 현재는 ‘프로바이오틱스’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유산균 제품은 우리나라 초창기 건강기능식품 시장을 주도하다 한때 시들해졌다. 그러다 2016년 종근당건강이 ‘락토핏’으로 대박을 터트리면서 건강기능식품의 원조로서 위상을 다시 강화하고 있다. 락토핏은 분말 스틱 포 제형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으로 출시 첫해 180억 원의 매출액을 보이며 공전의 히트를 쳤다. 그리고 2020년, 4년 만에 2,620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프로바이오틱스 시장의 절대 강자로 우뚝 섰다. 락토핏의 성공은 유산균 제2의 전성시대를 열었으며, 제약사들이 너도나도 건강기능식품 시장에 뛰어드는 기폭제 역할도 했다.
참고로 사람들은 유산균과 프로바이오틱스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유산균은 ‘당류를 발효시켜 젖산을 생산하는 균주’이고 프로바이오틱스는 ‘건강한 사람의 장에 살고 있는 균 중 적절한 양을 섭취했을 때 체내에 들어가서 건강에 좋은 효과를 주는 균(유익균)’이다. 한마디로 유산균은 발효에 관련된 모든 균주를 총칭하는 것이고, 프로바이오틱스는 이 중 인체에 유익한 효과를 제공하는 ‘장내 미생물’을 통칭하는 것이다.
현대를 품은 건강기능식품 절대 강자 ‘홍삼’
우리 조상들에게 발효 식품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일반식품과 건강기능식품의 중간쯤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홍삼은 다르다. 홍삼이야말로 전통적인 의미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건강기능식품은 물론 의약품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홍삼은 인삼 가공품으로, 인삼을 찐 뒤 말린 것이다. 통일신라 시대부터 중국에서 우리나라 인삼의 인기는 대단했다. 문제는 운송 과정에서 장기간 보관이 까다로운 인삼이 잘 썩는다는 점이었다. 고려 시대 중기에 이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것이 홍삼이다. 홍삼은 보관뿐만 아니라 약효도 더욱 높아져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홍삼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것은 KGC인삼공사의 ‘정관장’이다. 정관장의 ‘정(正)’은 순수하고 다름이 없다는 의미다. ‘관(官)’은 나라를 뜻하는 관청이나 정부를 의미하고, ‘장(庄)’은 포장하거나 보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바르고 제대로 된 제품을 나라에서 보장한다는 뜻이다. 정관장의 유래는 1899년 대한제국에서 황실 물품을 관리하는 궁내부 내장원 내에 ‘삼정과’ 설치로 알려져 있다. 삼정과 설치 이후 정부 차원에서 홍삼 관리가 이뤄졌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에서, 해방 후에는 대한민국 전매청이 관리했다. 정관장이란 이름은 1956년 전매청이 홍콩 신문에 광고를 게재하면서 처음 사용됐다. 올해로 125년이라는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02년 건강기능식품법이 제정된 이후 정관장 홍삼은 ‘면역력 개선’, ‘피로 개선’ 기능성을 인정받았고 2008년 ‘혈행 개선’, 2009년 ‘기억력 개선’, 2012년 ‘항산화 작용’, 2014년 ‘갱년기 여성 건강’의 기능성을 식약처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식약처로부터 6대 기능성을 인정받은 품목은 현재까지 홍삼이 유일하다.
홍삼은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집계된 이후 한 번도 1위 자리에서 밀려난 적이 없는 ‘절대 강자’이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가 발표한 ‘2022년 건강기능식품 시장 현황 및 소비자 실태조사’에서도 홍삼은 1조 4,062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2018년 이후 점유율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비싼 가격 때문이다. 실제로 건강기능식품협회가 성인남녀 3,04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홍삼을 재구입하지 않는 이유로 ‘가격이 비싸서’가 43.3%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건강기능식품 싹을 틔운 ‘효소’와 ‘비타민’
건강기능식품업체 관계자들에게 “현대적 개념에서 건강기능식품의 원조 제품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상당수가 ‘원기소’라는 제품을 꼽는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에게 생소한 원기소를 알고 있는 연령대는 50대 중반 이상이다. 1960~70년대 성장기 어린이 영양제였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 외국의 원조 식량에 의존해 왔던 1950년대와 경제발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70년대에는 우리나라에 건강식품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시대에 서울약품공업사에서 1956년 원기소를 출시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양제이자 건강기능식품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1960~70년대 성장기 어린이들에게 결핍되기 쉬웠던 필수적인 영양소를 보충해주는 건강보조식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던 시절에 흔히 말하는 ‘잘 사는 집 자식들’이 먹는 제품이었던 것이다.
주성분인 보리 곡류 효소 분말은 보리 분말에 황국균을 접종해 발효시킨 것으로 아밀라아제와 프로테아제가 다량 함유되어 소화를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끼니를 거르는 집도 흔한 시절에 고소하면서 맛있었기 때문에 당시 어린이들에게는 군것질거리로도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한 번에 몇 개씩 집어 먹다가 부모님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는 어린이도 부지기수였다는 얘기도 전설처럼 내려온다.
이후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우리나라에 건강식품에 대한 개념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982년 당시 영양식품군 가운데 건강식품류는 현미효소, 맛나효소, 율무효소 등 효소류 제품이 전부였다.
비타민은 1930년대 ‘비타민C’가 발견되면서 건강기능식품으로 발전했다. 헝가리의 생화학자 알베르트 센트죄르지는 식물즙과 동물의 부신에서 분리한 ‘헥수론산’이 괴혈병을 막는 ‘비타민C’라는 사실을 밝혀냈고, 이 연구로 193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리고 1950년 ‘합성 비타민’이 등장하면서 저렴한 제조비용으로 쉽게 공급할 수 있게 돼 본격적인 상품화에 돌입했다. 1990년대에는 ‘건조효모 비타민’ 제조 기술이 등장했으며, 2008년에는 ‘천연원료 비타민’ 제조 방식이 나오는 등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 비타민 제품의 원조는 1963년 발매된 ‘아로나민’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종합영양제로 마케팅을 펼쳤는데 실제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활성 비타민 제품이다. 1960년대 쌀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들은 비타민, 그중에서도 비타민B 부족 상태가 되기 쉽고, 이로 인해 각기병 등 비타민 부족으로 인한 질병에 걸리기 쉬웠다. 이에 일동제약은 연구를 거듭한 끝에 독자기술로 활성 비타민 B1 자체 합성에 성공하게 된다.
우리나라 국민에게 ‘비타민’이란 이름을 각인시킨 제품은 1983년 출시된 경남제약의 ‘레모나’이다. 국내 최초의 물 없이 먹는 가루 비타민으로 1포에 2g짜리 제품인 레모나, 1.5g짜리 제품인 레모나S가 있다. 2g짜리 제품은 비타민C 500mg, 1.5g짜리 제품은 375mg이 함유된 제품이다. 달콤하고 새콤해 간식 대용으로 먹기도 한다.
1980년대 이후 여러 기업이 거의 동시에 다양한 건강기능식품을 출시하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시장은 더욱 다양해지고 성장해왔다. 사람들도 건강기능식품 복용을 생활화하는 추세다. 어떤 산업이든 시장을 개척한 제품이 있다. 한때는 부유층만 먹을 수 있었던 건강기능식품이 이제는 일반인에게 친숙한 소비 품목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처음 시장을 개척한 ‘원조’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