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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원조’가 뭐길래?

By 2024년 04월 24일6월 25th, 2024No Comments

음식에서 가전제품까지… 치열한 원조 논쟁

비슷비슷한 메뉴들이 즐비한 먹자골목에서 ‘원조○○’이란 간판이 보인다면 선뜻 마음이 동한다. 때문에 서울만 해도 곳곳에 원조 먹자골목이 즐비하다. 장충동 족발골목이 있는가 하면, 신림동 순대골목이 있다. 무교동 낙지골목이 있고, 신당동 즉석떡볶이골목도 있다. 어디 서울뿐인가. 의정부에 가면 부대찌개골목이, 부산에 가면 밀면의 원조집이 있다. 저마다 ‘진짜 원조’, ‘1등 원조’, ‘정통 원조’를 자처하며 내가 진짜 원조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뭘까? 어떤 마케팅 비밀이 숨어 있을까?

에디터 _ 정해미

원조 맛집 옆집의 마케팅 전략

‘원조’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처음으로 시작한 사람, 어떤 사물이나 물건의 최초 시작으로 인정되는 사물이나 물건을 뜻한다. 쉽게 이야기해서 ‘누가 제일 처음 시작했느냐’가 관건이다. 하지만 음식이든 물건이든 한 가지가 유행하면 우후죽순 그 아류가 생겨나고, 심지어 아류작이 더 유명해지기도 하면서 ‘원조’의 의미가 무색해지기도 한다.
며느리에게도 레시피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광고로 유명해진 ‘마복림 할머니’의 떡볶이집은 신당동 떡볶이골목 내에서도 원조집으로 통한다. 물론 광고의 힘이 컸다. 그렇다면 마복림 할머니 옆에서 영업하던 수많은 즉석떡볶이집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원조가 아니기 때문에 모두 망했을까?
가장 재미있는 반전은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집 바로 옆에서 영업하던 소형 떡볶이집의 변신이다. 유명한 원조집 옆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획기적인 마케팅 방법을 탄생시켰다. 소형 떡볶이집 7개 매장의 점주들이 모여 하나의 대형 점포를 만들어낸 것이다. 규모면에서 일단 원조 떡볶이집을 능가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이에 더해 7명의 주인이 요일별로 영업을 하고 수익을 챙겨가는 전략을 사용해 서비스 경쟁력에서도 우위를 차지했다. 뿐만 아니라 추억의 DJ박스를 복원하여 그 옛날 ‘허리케인 박’을 다시 만들어냈다. 복잡한 주차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발렛파킹 인원도 대폭 늘렸다. 신당동 떡볶이골목을 처음 찾은 소비자들은 당연히 가장 유명한 원조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집을 찾아 간다. 하지만 규모도 크고, 서비스도 좋고, 옛날 DJ박스까지 복원해 눈길을 끄는 원조의 옆집에 더 관심을 보이는 소비자가 늘어났다. 그렇다고 원조집이 어려워진 것은 아니다. 할머니의 2세들이 경영에 뛰어들며 제2의 마복림 떡볶이집을 탄생시키는 등 골목 상권 전체가 더욱 활성화되었다. 원조의 옆집, 그들의 유연성있는 변신이 전체를 상승세로 이끈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례가 이처럼 긍정적이진 않다. 강릉 카페거리가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 방배동 카페골목은 우리나라 카페거리의 원조격이었다. 1978년 서울 사당동 이수교차로 인근에 ‘장미의 숲’이 들어서면서 방배 카페골목의 유명세가 시작되었다. 인근에 유명 연예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도 적잖이 들어서며 단단한 상권을 형성해 나갔다. 하지만 유명세에만 의지할 뿐 메뉴, 디자인, 마케팅 등에서 주변 연남동이나 성수동 같은 새로운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했고 거리 전체의 몰락을 가져왔다.

원조라고 방심마! 초코파이.불닭.컵라면 등 상표권 상실

인기가 높은 브랜드나 경쟁 브랜드를 모방해 출시한 제품을 ‘미투(Me Too) 제품’이라고 한다. 지금 유통가에서는 이러한 미투 제품이 트렌드처럼 번지고 있다. 미투 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어느 회사가 원조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이다. 디자인이나 상품이 비슷한 수준에 그치는 경우도 있지만, 베끼기 논란이 거세져 기업간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는 사례로 심심치 않다.
오리온(옛 동양제과)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초코파이를 제조해 판매한 기업으로 1976년 ‘오리온 초코파이’에 대한 상표권을 획득했다. 이후 초코파이가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자 후발주자들이 나타났다. 롯데제과는 1979년 초코파이 제품을 출시했고, 1980년 ‘롯데 초코파이’에 대한 상표권을 획득했다. 또 크라운제과는 1989년부터 ‘크라운 초코파이’를, 해태는 ‘해태 초코파이’를 판매하는 등 ‘미투 상품’을 봇물처럼 쏟아냈다. 오리온은 롯데가 ‘롯데 초코파이’ 상표권을 재등록해야 하는 시점인 1990년 문제를 제기했다. 국민 10명 중 9명이 초코파이라면 오리온을 떠올리는데 다른 업체가 초코파이 명칭을 쓰는 것은 상표권 침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초코파이가 ‘보통명칭 내지 관용상표가 됐다’며, 소비자들이 초코파이를 브랜드가 아닌 제품의 종류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상표로서 기능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오리온에게 패소의 소식을 전했다. 이를 통해 ‘불닭’, ‘호빵’, ‘컵라면’ 등도 고유명사로 기능하게 되면서 상표권이 상실됐다.

이건 좀 너무하잖아 중국 짝퉁 브랜드

▲ 차오단 ­ 조던
나이키의 운동화 중 ‘에어 조던’ 시리즈는 가장 유명하다. 마이클 조던이 덩크슛을 하고 있는 모습을 로고로 만들어 1985년 출시한 이래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브랜드가 되었다. 이 조던화를 그대로 베낀 ‘차오단’은 이름부터 이미 조던의 중국식 표기이며, 심지어 조던의 이미지와 등번호(23번)도 그대로 사용하였다. 이에 조던 측은 차오단을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했지만 ‘조던은 흔한 미국인 이름’이라는 판결을 내리며 1심과 2심 모두 조던 측의 소송을 기각했다. 이에 승복하지 않고 항소를 진행한 결과 3심에서는 차오단이 조던 측에 정신적 피해 보상에 따른 위자료 6,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였으나 ‘차오단’ 브랜드는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이상한 판결을 내렸다. 고작 6,000만 원을 받고 합법적으로 짝퉁 제품이 판매되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 발리바게트 ­ 파리바게뜨
우리나라에선 이미 유명한 ‘파리바게뜨’. 그 유명세에 힘입어 세계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며 2004년 중국 상하이 지점을 시작으로 360개가 넘는 지점을 전 세계에 보유하고 있다. 중국에서의 인기도 크게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파리바게뜨의 이름을 교묘히 베낀 ‘발리바게트’가 생겨 파리바게뜨 측은 상표권 소송을 진행했다. 하지만 파리바게뜨가 파리를 연상케 하는 로고를 가지고 있어 원산지 오인을 불러올 수 있다는 이유로 브랜드 등록이 불가하기 때문에 파리바게뜨에 패소 판정을 내렸다. 당연히 승소할 줄 알았던 판정에서 패소하는 바람에 관계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줬으나 다행히 2020년 파리바게뜨의 고유 상표권을 다시 인정하며 분쟁은 일단락 되었다.


▲ 쌍환 SR-V – 혼다 CR-V
중국의 쌍환 자동차는 일본의 혼다 자동차가 지난 2008년 출시했던 SUV ‘CR-V’의 디자인을 그대로 모방한 자동차 ‘SR-V’를 출시했다. 쌍환은 혼다의 쌍둥이 자동차라 불릴만큼 비슷한 디자인을 구현하면서도 9만 위안(약 1,540만 원)이 넘지 않는 가격, 더 큰 엔진인 2.2L 배기량을 무기로 1년에 무려 1만 2,000대를 판매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에 혼다 자동차는 쌍환을 대상으로 디자인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쌍환 역시 혼다의 디자인권에 대해 무효심판을 제기하며 진흙탕 싸움을 벌였지만 유사 디자인이 아니라는 판결을 얻어냈다. 이로써 쌍환이 혼다의 짝퉁차를 통해 벌어들인 이득은 고스란히 쌍환의 몫이 되었다.

원조, 지속적인 노력으로 지켜지는 것

시장조사업체 도쿄상공리서치에 따르면 일본 기업 2,519곳이 올해 창업 100주년을 맞는다. 야마나시현의 불교용품 전문점인 슈미야신불구점은 창업 1000주년을 맞았다. 이에 따라 일본의 ‘1000년 기업’은 8곳으로 늘었다. 서기 578년에 창업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곤고구미와 기네스북이 인증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숙박시설 게이운칸(창업 705년) 등이 창업 1000년이 넘는 기업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1~5위가 모두 일본에 있다. 일본에 이토록 오래된 기업이 많은 이유는 가업을 승계하는 전통과 제도적 지원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비단 이런 제도적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결과는 아닐 것이다.
앞서 중국에서의 짝퉁 논란 사례에서와 같이 하나의 기업이나 제품이 유명해지면 별다른 노력없이 그 성과를 빼 오려는 사람들은 늘 있게 마련이다. 이제는 ‘원조’도 안주하면 도태된다. 배끼려는 사람들과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이런 노력이 없다면 ‘짝퉁’이 ‘원조’로 바뀔지도 모른다.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는 말이 있다. 원조의 ‘이름’과 ‘품격’을 지키기 위해서는 남아 있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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