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조정실 소속 규제심판부가 지난 1월 16일 건강기능식품에 대해 대규모 영업이 아닌 소규모 개인 간 재판매를 허용하도록 식약처에 권고했다. 사실상 당근, 중고나라 등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건강기능식품을 개인끼리 사고 팔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얘기다. 정부는 현재 건강기능식품 개인 간 재판매 규제가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등 국민 생활에 불편을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식약처, 건강기능식품업체 등은 직접 섭취하는 건강기능식품의 중고거래를 허용할 경우 부작용 등이 나타나면 책임 소재를 찾을 수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에디터 _ 최민호
국민 불편 해소라는데…
건강기능식품은 결핍되기 쉬운 영양소 또는 인체에 유용한 기능성을 가진 원료나 성분을 사용해 제조 및 가공한 식품으로, 홍삼, 비타민, 프로바이오틱스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건강에 대한 국민 관심 증대에 따라 2023년 기준 국내 시장규모가 약 6조 2,000억 원에 달하고, 10가구 중 8가구는 연 1회 이상 구매하며, 건강기능식품을 선물하는 비중도 약 26%에 이른다.
규제심판부는 “최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개인 간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해당 규제가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등 국민 생활에 불편을 주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건강기능식품은 대부분 상온 보관과 유통이 가능하고 소비기한도 1~3년으로 재판매가 가능한 일반 식품 대비 길게 설정되고 있으며, 온라인 판매의 비중이 68%를 차지할 만큼 이미 보편화된 점 등을 고려하면 안전 위해 우려도 크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미국, EU, 일본 등 해외 주요국 모두 개인 간 재판매를 허용한다는 점에서 글로벌 규제 수준과도 차이가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규제심판부는 ▲식약처는 식품안전과 유통질서가 보장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올해 1분기 내 건강기능식품의 소규모 개인 간 재판매를 허용하는 합리적 대안을 마련할 것 ▲유사·해외 사례, 특성 등을 고려해 거래횟수, 금액 등 세부 허용 기준을 결정할 것 ▲개인 간 재판매 허용 기준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무신고 영업 등 일탈 행위를 감시·차단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 ▲1년간 시범사업을 시행한 후, 시행결과를 분석하고 추가로 국민 의견을 수렴하여 국민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제도화할 것 등의 개인 간 재판매 세부 내용도 마련했다.
규제심판부는 “이번 개선 권고를 통해 건강기능식품 시장의 전반적 유통질서는 유지하면서도 국민 편의를 한층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며 “명확한 법령해석을 통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두텁게 보장하고, 실수요자의 구매 문턱을 낮춰 건강기능식품 시장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법리적 충돌 가능성
현재 우리나라는 개인 간의 건강기능식품 재판매가 건강기능식품법에 따라 금지돼 있다. 건강기능식품법 6조 2항에 따르면, 건강기능식품 판매업을 하려는 사람은 일정 시설을 갖추고 영업소 소재지를 담당하는 지자체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식약처는 그동안 개인 간 재판매 역시 신고가 필요한 ‘영업’에 해당한다고 해석해 금지했다. 현재 개인 간 거래 플랫폼에서 건강기능식품 월평균 자동 차단 건수는 약 1만 1,000건, 신고 차단도 약 2만 9,000건에 달한다.
하지만 규제심판부는 대법원 판례 등을 고려했을 때, 현행 관련 규정을 개인 소규모 재판매 금지로 해석하기엔 법적 근거가 불명확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신고하지 않은 개인 간 재판매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무거운 수준의 처벌 대상으로 보는 것은 국민 권익 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건강기능식품은 대부분 상온 보관으로 유통을 할 수 있고 소비기한도 1~3년으로 재판매가 가능한 일반 식품보다 길게 설정되고 있어, 안전·위해 우려도 크지 않으리라 전망하고 있다.
결국, 법적 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개인 간 재판매가 허용되면 기존의 건강기능식품법과 완전히 대치되기 때문이다. 개선 권고 내용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우선 올해 1분기 내 건강기능식품의 소규모 개인 간 재판매를 허용하는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라는데, 법률 일부를 개정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개인 간 재판매 허용 기준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무신고 영업 등 일탈 행위를 감시·차단하는 방안 마련은 이미 말 자체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안전성은 누가 책임지나?
건강기능식품업계에서는 개인 간 재판매 허용이 무리한 추진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바로 ‘안전성’이다. 규제심판부가 ‘소비자의 선택권 제한’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국민의 경제적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렇게 되면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국민의 ‘안전’은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된다. 개인 간 재판매가 허용될 경우 멀쩡한 제품이라도 잘못된 보관방법이나 유통 등으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름 성분인 오메가3의 경우 상온에 오래 노출되면 소비기한이 충분히 남아있어도 산패 등으로 인해 품질관리와 안전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건강기능식품업체 관계자는 “업계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며 “당근마켓 등 개인 간 거래 플랫폼이 판매 창구로 악용되며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는 불법 제품들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면, 소비자는 건강에 문제가 발생하고 업체는 이에 따른 이미지 손실 등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성장하면서 이상 사례 신고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21년 국정감사에서 김원이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건강기능식품 이상 사례 신고현황’에 따르면, 품목별로 총 5,795건의 이상 사례가 접수됐으며, 2018년 1,066건에서 2021년 1,413건으로 24.6% 증가했다. 소화불량, 가려움 등 부작용을 겪은 사례도 최근 5년간 8,410건이 신고됐다. 만약 개인 간 재판매가 허용된다면 이상 사례 신고는 더욱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검증받지 않은 해외직구 건강기능식품도 더욱 기승을 부릴 수 있다. 지난 2월 1일 식약처는 국내·외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판매하는 해외직구 건강기능식품 중 위해 성분 함유가 의심되는 제품 100개를 대상으로 2023년 9월 18일부터 2024년 1월 8일까지 기획검사를 실시한 결과, 21개 제품에서 국내 반입차단 대상 원료·성분이 확인됐다. 해외직구 건강기능식품 안전성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것이다.
매년 식약처와 관세청은 해외직구로 반입되는 불법 건강기능식품을 단속하고 있지만, 실효성은 크지 않다. 세관 검사를 피하기 위한 수법도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겉포장은 건강기능식품으로 표기해 놓고 내용물은 발기부전치료제, 스테로이드제, 국내 반입차단 원료·성분 등이 포함된 제품을 넣는 ‘통갈이’, ‘라벨갈이’ 등의 수법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 간 재판매가 허용된다면 건강기능식품 전체 시장에 대한 불신이 깊어질 수 있다.
건강기능식품 개인 간 재판매에 반대하고 있는 약사회는 “중고거래를 허용하지 않아도 건강기능식품은 이미 백화점, 편의점 등 판매 채널이 다양하다”며 “규제 완화라는 명목으로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건강기능식품이 무분별하게 판매된다면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던 국민 건강 안전은 담보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