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헬스&뷰티 시장 분석> – 싱가포르 실버케어 시장

“우리는 싱가포르의 모든 사람들이 존엄성을 가지고 안전하고 행복하게 나이들 수 있도록 노인 돌봄에 신경 쓸 것입니다.”
로렌스웡 총리의 2024년 첫 국경일 연설에서 언급된 말이다. 현재 싱가포르는 저출산과 높은 기대수명의 영향으로 아세안(ASEAN) 10개국 중 가장 고령화가 많이 진행된 국가로 정부의 적극적인 해결 의지가 드러나고 있다. 이에 싱가포르의 고령화 현황, 고령 인구의 지역 사회와의 연결성 강화 및 주거·의료 인프라 지원을 위한 정부의 대응 전략,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실버케어 산업으로 새롭게 주목받는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살펴봤다.
싱가포르 인구 통계에 따르면, 2014년 6월 12.4%였던 65세 이상 인구가 2024년 6월에는 19.9%로 증가하는 등 인구의 고령화가 점차 심화되고 있다. 80세 이상의 인구수도 2014년 8만 5,000명에서 2024년 14만 2,000명으로 약 65% 증가했다. 이는 2024년 기준 사상 최저치로 감소한(0.97명) 출산율과, 매우 높은 기대수명(83세)이 결합된 결과다. UN 인구 데이터를 인용하면 싱가포르인의 중위연령은 1950년 19세에서 2025년 36세로 급격히 증가했다. 시장조사기관인 스태티스타(Statisa)는 이러한 증가 추세로 인해 2070년에는 중위연령이 약 58세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한편, 2021년 기준 싱가포르의 1인당 정부 의료비 지출은 3,096싱가포르달러(한화 약 337만 원)로 이는 2012년의 911싱가포르달러(한화 약 99만 원)에서 339% 증가한 수치다. 현지 언론 CNA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노인케어 예산은 약 17억 싱가포르달러(한화 약 1조 8,548억 원)에서 30억 싱가포르달러(한화 약 3조 2,735억 원)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인구 고령화와 지원책 강화로 인해 이 지출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싱가포르 정부는 예산안을 통해 저소득 노인에게 1,000싱가포르달러(한화 약 109만 원)를 제공하고 장기간병 서비스 보조금을 최대 10%까지 인상하기로 하는 등 2025년부터 2030년까지 최대 21억 싱가포르달러(한화 약 2조 2,920억 원)의 노인케어 지원금을 제공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싱가포르 정부의 고령화 대응 전략
싱가포르 정부는 인구 고령화의 영향에 대응하기 위해 ‘APSA(Action Plan for Successful Ageing)’과 ‘Age Well SG’라는 두 가지 계획을 수립해 시행하고 있다.
2015년에 출범한 APSA에는 보건, 고용, 평생학습, 사회적 지원 등 분야에서 70개 이상의 이니셔티브가 담겨 있다. 이 계획의 목표는 나이든 고령자도 계속 사회에 기여하며 보람 있는 삶을 영위하도록 보장하는 데 있다. APSA의 주요 정책으로는 평생학습을 위한 국립 실버 아카데미(National Silver Academy), 고용 및 은퇴 지원, 의료 및 웰니스, 주택과 교통의 고령친화적 개선 등이 포함된다. 이 계획은 15개 이상의 부처 및 정부 기관이 협력하는 범정부 차원의 노력으로 추진되며, 2023 인구구조 및 경제 여건 변화에 맞춰 개편됐다. 개편된 APSA는 디지털 문해력 제고와 고령자 고용 등 새로운 필요에 초점을 맞추어 강화됐다.
Age Well SG는 2023년에 시작된 또 다른 계획으로, 주택, 교통, 활기찬 노년 활동 프로그램 등 지역사회 기반 고령화 대응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 계획은 고령자가 지역사회에서 적극적이고 독립적으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Age Well SG의 주요 내용은 노년 활동 프로그램 제공을 위한 센터(Active Ageing Center) 확충, 주택 및 교통의 고령친화적 인프라 개선, 지역사회 돌봄 및 예방 건강관리 등이다.
이러한 정책들이 시행되면서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여율 상승 등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60세 이상 고령자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14년 12.3%에서 2024년 18.9%로 높아져, 고령 인구 증가와 이들의 고용 가능성을 높이는 정책 효과를 보여준다. 또한 싱가포르의 일간지 Today에 따르면, 2023년 4월 기준 약 28만 3,900가구가 Age Well SG의 일환인 ‘활동적인 노인을 위한 편의 증진(Ease)’ 프로그램에 따라 노인 편의시설 설치 지원을 받았다.
다양한 부문에서 실버 경제 부상
노년층을 위한 친화적 인프라, 지역사회 돌봄, 예방 의료에 대한 투자가 지속되면서 여러 산업 분야에서 관련 제품과 서비스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이는 다양한 부문에서 혁신 기업들이 싱가포르의 관련 분야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은 고령자가 스스로 건강을 관리할 수 있게 돕는 기술로 싱가포르가 예방 중심 및 재택 돌봄 체계로 전환함에 따라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Prudential의 ‘Digital 100’ 연구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싱가포르인의 절반 이상이 보다 오래 건강하게 생활하는 데 모바일 기기와 앱이 가장 중요한 도구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76%는 피트니스 트래커를 착용하고, 73%는 모바일 건강 앱을 사용하며, 72%는 웨어러블 건강 모니터를 활용하고, 67%는 모바일 건강 앱을 이용한다고 밝혔다. 이는 싱가포르가 지역사회 기반의 기술 활용 돌봄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디지털 헬스 솔루션을 해외 기업이 도입할 기회가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싱가포르 경영대학(SMU)의 2024년 연구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노인 10명 중 8명은 자신의 집에서 노후를 보내는 것을 선호하며, 이에 따라 노인 친화적인 주택 설비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낙상 감지 시스템, 동작 감지 조명, 미끄럼 방지 바닥재, 스마트 욕실 보조기기 등의 솔루션이 가정에서 필수품이 되고 있다. 2024년 The Straits Times 보도에 따르면, 싱가포르 정부는 향후 10년간 Age Well SG 이니셔티브에 약 35억 싱가포르달러를 투입하여 노인들에게 더 나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자립적인 생활을 지원할 계획이다. 싱가포르의 이러한 고령화 대응 솔루션의 지속적인 성장과 확대는 노인 안전 기술 및 스마트 홈 자동화 분야에 특화된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고령 환자를 포함한 각종 의학적 진단에 활용될 수 있는 첨단 의료 기술 분야 협력도 활발하다. 2024년에 한국의 의료 인공지능 기업인 루닛(Lunit)은 싱가포르 국립의료그룹(NHG)과 협력하여 공공 의료기관의 흉부 X-ray 판독 과정을 개선하기 위한 국가 단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루닛의 AI 기반 진단 도구인 Lunit INSIGHT CXR이 NHG 산하 1차 의료기관들에 도입되어 X-ray 판독 순위 결정과 판독 시간 단축에 활용되고 있다. 싱가포르 공공의료 시스템에서는 진단 영상 수요가 높은 반면 전문 방사선 인력은 제한적이기에, 인력 운영 공백을 메우는 이러한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NHG는 2025년 8월까지 프로젝트를 완료한 뒤 효과가 입증되면 이 AI 도구의 전국 병원 확대 적용을 권고할 계획이다. 현재 루닛의 솔루션은 창이종합병원, 싱가포르종합병원, 국립암센터 등 싱가포르 내 다른 의료기관에서도 활용되고 있어서, 싱가포르 의료 생태계에서 한국 의료 AI 기술의 역할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민호 기자fmnews@fm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