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직접판매
동아시아의 직접판매 시장은 지역적 특성과 문화에 따라 독특한 특징을 보여준다. 가족과 친구 간의 친밀한 관계를 활용해 제품을 전파하는 경우가 많아 신뢰가 중심이 되지만, 때로는 관계 악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번에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개국의 직접판매 시장을 속속들이 들여다 봤다.
에디터 _ 두영준
동아시아 전통 강자 한국
한국은 동아시아 최대의 직접판매 시장으로, 다단계판매, 후원방문판매, 방문판매로 나뉜다. 흥미로운 점은 전 세계에서 후원방문판매라는 독특한 형태를 가진 나라는 한국뿐이라는 점이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직접판매 매출액은 약 163억 달러로 세계 3위. 건강식품과 화장품, 특히 K-뷰티가 이 시장을 이끌고 있으며, 여성 사업자의 참여율도 높은 편이다. 주부나 자영업자들이 부업으로 시작해 경제활동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에서 직접판매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시기는 1995년. 이 해는 방문판매법이 개정되며 다단계판매와 피라미드 사기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한 중요한 시점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속속 진출하며 시장이 성장했고, 이제는 안정적인 법적 기반 위에서 건강하게 운영되고 있다.
또, 시·도 다단계판매업 등록업무가 시작된 후 연말까지 65개의 다단계판매업체가 등록했다. 등록업무 시작으로 활발해진 다단계판매 시장에는 암웨이(등록번호 1호), 썬라이더, 한국포에버리빙프로덕트에 이어 한국이엑셀인터내셔날, 렉솔코리아, 뉴스킨코리아 등 유수의 외국계 업체가 한국 시장을 두드렸다.
또한 이러한 법률 시행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악덕 피라미드 업체들을 미연에 차단하는 동시에 다단계판매 시장이 신유통 분야의 하나로 자리 잡기 시작한 계기가 됐다. 법 개정으로 인해 보다 안정된 시장을 형성하던 다단계판매업계는 1995년 전체 매출액 1,610억 원을 기록했다.
외국계 기업들의 진출이 보다 더 활발해졌고, 다양한 제품이 소비자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1996년 하반기엔 106개 이상의 업체들이 사업을 진행하는 등 시장 규모가 점증적으로 확대됐다. 특히 이 때에는 다단계판매업체 등록 판매원수가 약 150만 명 이상인 것으로 추산됐고, 전국의 한 가정(4인 가족 기준) 당 1년에 5만 5,000원 상당의 다단계판매업체 제품을 구입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외국계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해짐을 틈타 삼왕인터내셔날(현 앨트웰)과 에스티씨인터내셔널, 삼보유토피아 등의 국내 기업들도 한국 다단계판매 시장에 진출하면서 급속하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시장 중국
중국의 직접판매 시장은 굴곡이 많았다. 1990년대에 다단계판매가 활발했지만, 1998년 사회 혼란을 이유로 전면 금지됐다. 이후 방문판매를 통해 점진적으로 회복되었고, 현재는 재도약을 모색 중이다.
중국은 현재 다단계판매(전소)를 허용하고 방문판매(직소) 라이선스 발급을 재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떠오르고 있는 시장이다. 직접판매세계연맹에 따르면 중국의 직접판매 시장 규모는 2018년 357억 달러로 세계 1위를 차지했고, 2020년 192억 달러, 2023년 150억 달러로 급격히 줄어들어 4위로 밀려났으나 다단계판매 시장을 개방한다면 재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에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인맥이 넓으면 손쉽게 해결할 수 있으나,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도 인맥이 없으면 해결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중국은 인맥을 뜻하는 ‘꽌시’ 문화가 관행적으로 이어지고 있고, 개개인뿐만 아니라 정부의 행정, 기업의 경영 등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4억 명의 인구를 가진 중국은 이처럼 꽌시 문화가 관행적으로 이어지고 있어 직접판매를 하기에 적합한 국가로 꼽힌다.
사실 중국은 1990년대만 하더라도 다단계판매를 특별히 금지하지 않았다. 지난 1993년 GNP 13.4%의 고도성장을 이룩하면서 경제 대국으로 변모하던 중국 시장에 진출한 다단계판매업체가 눈에 띄었다. 에이본 화장품은 당시 광저우와 상하이에 7만 7,000여 명의 판매원을 거느렸고, 암웨이와 메리케이는 제조시설을 설립해 장기 사업 운영 터전을 다졌다. 암웨이는 중국에 진출하자마자 수만 명의 판매원을 확보했다. 뉴트리 메틱스, 네이처스선샤인, 썬라이더, 재팬라이프도 당시 중국에 진출했다.
당시 중국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중국에는 100~ 150여 개의 다단계판매업체가 있고, 종사자는 50만 명에 달했다. 외국 다단계판매업체의 중국 진출과 더불어 다단계판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북경, 상하이 등지에서 암웨이, 에이본, 메리케이 후원으로 세미나가 잇따라 개최되기도 했다.
그러다 1998년 중국 정부는 다단계판매가 사회 안정을 해친다는 이유로 이를 전면 금지했다. 이 조치에 반발하여 후난성, 상하이, 광저우 등 여러 지역에서 과격한 시위가 발생했으며, 시위 진압 과정에서 10여 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당하는 등 심각한 사회적 혼란이 일어났다.
특히 후난성 장자제시에서는 1998년 4월 23일과 24일에 약 4,000명의 주민이 다단계판매 금지에 반발하여 폭동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강력 진압으로 4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연행되었다. 이러한 사태에 대응하여 중국 정부는 범법자들을 엄격히 처벌하라는 긴급 지시를 내리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한편 중국에서는 국가 명칭이나 국기, 국장, 군기, 훈장 등과 같거나 비슷한 도형, 중앙국가기관이 소재하는 특정 지명이나 대표성 건축물의 명칭, 도형을 상표로 사용하지 못한다. 또한 중국인은 자신의 체제나 정치문제에 외국인이 왈가왈부하는 것에 대해 내정간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업을 진행할 때 정치 관련 대화를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대만의 직접판매 시장은 지난 2023년 45억 3,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려 전 세계 10위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대만은 인구가 약 2,300만 명에 불과하지만, 1인당 GDP가 3만 2,756달러(2022년 기준)로 높은 수준이어서 직접판매 시장의 구매력이 상당히 강한 편이다.
대만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꽌시 문화가 중요한 사회적 요소다. 대만 소비자들은 건강과 외모 관리에 높은 관심을 보이며, 이로 인해 건강식품과 화장품·스킨케어 제품이 직접판매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한다. 한방 재료를 활용한 건강식품이나, 피부 미용 관련 고급 화장품이 특히 인기다.
현재 대만에 진출해 있는 국내 기업은 애터미, 리만코리아, 지쿱 등이 있으며, 국내에 진출해 있는 중화권 기업으로는 대만에 본사를 둔 토탈스위스인터내셔널과 홍콩에 본사를 둔 카나이인터내셔널이 있다. 중국 기업인 롱리치가 지난 2014년 한국에 진출하기도 했으나 실적 부진을 이유로 2019년 국내 다단계판매 라이선스를 반납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조용히 강한 일본
일본의 직접판매 시장은 지난 2023년 106억 3,0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전 세계 5위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일본 소비자들은 기업과 브랜드의 신뢰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단계판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아, 신뢰 구축과 투명한 운영이 필수적이다. 일본은 고령화 사회로, 직접판매의 주요 고객층은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고, 건강보조식품, 뷰티 제품, 생활용품 등이 고령층에게 인기가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일본의 총인구는 2024년 기준 1억 2,375만 명이다. 지난 9월 15일에 발표된 총무성 추계에 의하면 65세 이상의 고령자는 3,625만 명, 고령화율은 29.3%로 집계돼 고령자 수와 비율 모두 과거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 결과, 일본 인구 4명 중 1명은 고령자가 됐고, 2025년에는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가 모두 후기 고령자가 돼 5명 중 1명이 75세 이상이 되는 초고령 사회가 도래할 예정이다.
일본에서는 생활필수품에 대해서는 가급적 저가 제품을 구매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는 한편, 자신이 갖고 싶은 것, 애착이 있는 것에 대해서는 높은 금액을 지불하는 것도 꺼리지 않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일본 기업의 특징은 서두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 기업은 상품 공급자와 실시간 시세에 따른 최저가격에 의한 일시적 거래를 하기보다는 장기적, 안정적인 거래를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단기적 이익에 관한 관심은 그리 많지 않아 미국, 유럽 업체들이 단기적 수익을 중시하는 경향과 대비되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국내에 진출해 있는 일본 다단계판매업체는 네츄러리플러스코리아, 에나직크 등이 있다. 이들 기업은 이렇다 할 성과는 보이지 않고 있으나,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중이다.
이처럼 한국의 성장 가능성, 중국의 관계 중심 문화, 일본의 장기적 접근법 등 각국이 가진 특성과 시장 상황은 다르지만, 동아시아의 직접판매는 지역적 강점을 활용하며 성장 중이다. 다만, 신뢰와 투명성은 이들 모두에게 필수적인 요소다. 동아시아의 직접판매 시장이 앞으로 어떤 변화를 맞이할지 귀추가 주목된다.